황조가
훨훨 나는 꾀꼬리는
암수 다정히 노닐고 있는데,
외롭구나 이 내 몸은
누구와 함께 돌아가리.
학원이나 과외 공부에 지쳐 있다가 문득 날아가는 새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야! 나도 새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은데."
이렇게 혼잣말을 할 때가 있어요.
위의 노래에서는 바로 노란 새, 꾀꼬리에다가 자신의
마음을 담아 불렀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새나 꽃, 내리는 비,
구름과 같은 자연물에다 자기의 마음을 비추어서 시를
짓고 하였습니다.
이 때는 자연물이 내 마음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 주거나,
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동기로 쓰입니다.
여기에서 꾀꼬리가 바로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옛날 고구려의 제 2대 왕인 유리왕이 두 부인을 맞이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화의, 또 다른 사람음 치희라고 했습니다.
두 부인은 서로 왕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다투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왕은 두 부인을 따로 궁전을 지어 주고 둘을 떨어뜨려 놓았어요.
어느 날 왕이 사냥을 나가 일주일 동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두 부인은 싸움을 심하게 벌였습니다.
화희는 치희에게 신분이 낮은 자가 무례하게 군다고 모욕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치의는 분한 마음에 친정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왕이 이 일을 알고 치희를 쫒아갔지만 치의는
노여움이 풀리지 않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혼자서 쓸쓸히 돌아오던 길에 왕이 고개를
들어 보니, 꾀꼬리들이 저마다 정답게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지어 부른 노래가 바로 <황조가>입니다.
유리왕은 태어나서부터 아버지와 이별하고 많은 방랑과
고난 끝에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되어서도 일찍 왕비를
잃었기 때문에 정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강했다고 합니다.
또 유리왕은 아버지인 주몽에 비해 그렇게 신과 같이 전지전능한
인물은 아니었다고 전해집니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을 잘
해결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적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고, 오해와
질투로 아들 해명태자가 스스로 목숨을 꼲게 물어붙이기도 했습
니다. 여기에서도 역시 부인들의 다툼으로 하나가 떠나 버리자,
쓸쓸함과 더불어 삶이 덧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힘없고도
인간적인 모습을 였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한국고전문학]